스토크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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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프로 축구클럽으로 영국에서 현존하는 축구클럽 가운데에서는 셰필드 FC[5] 와 노츠 카운티 FC[6] 다음으로 오래된 구단이자, 프리미어리그 구단 가운데에서는 가장 오래 되었지만 2018년 강등되었기에 가장 오래된 프리미어 리그 구단이 아니게 되었다. 2013년, 창단 150주년을 맞이 했었다!
2. 상세
긴 역사 동안 영광스러운 기억은 별로 없는 구단이지만(1부보다 2부와 3부 리그에 머문 시간이 더 길다.), 세계 축구의 위대한 전설들 중 하나인 '''스탠리 매튜스''' 경이 '''1932년부터 1965년까지'''(!!)[7] 이 팀에서 활약하였으며, 역시 전설적인 골키퍼인 고든 뱅크스[8] 역시 이 팀에서 활약하였다.
대표적인 라이벌로는 같은 연고지에 소재한 포트 베일 FC이며, 이 둘 사이의 더비를 '포터리스 더비'라고 부른다. 그러나 2002년에 스토크가 2부 리그에 승격된 이후 소속 디비전이 다르기 때문에 거의 만날 일은 없다.
2.1. 남자의 팀
- 토니 풀리스 감독 지휘하에 선이 굵은 롱볼축구를 구사한 스토크 시티의 플레이에 감명받은 팬들은 팀에 '남자의 팀'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축구에서 발이나 공이 아닌 몸으로 대화한다고 '몸토크 시티'라는 별명도 있었다. 우스개소리로 감독이 몸 한번 만져보고 “몸 단단하네, 합격”하며 선수 뽑는다는 소리가 나올정도.
- 크라우치 한명만 바라보고 10명의 선수들이 개노답 크로스를 올리는 등 축구를 굉장히 고전적으로 독특하게 했다. 거기에 틈만 나면 상대 선수를 담구는 장면까지 나와 주말 예능 EPL을 더욱 더 재밌게 만들던 팀이었다.
- 강력한 피지컬을 활용한 끈끈하고 선굵은 축구를 구사하며 로리 델랍의 스로인이 유명했다. 그래서 스토크 검증이라는 재미있는 떡밥이 있었다. 스토크 시티로 대표되는 남자의 검증, 피지컬 축구를 느껴봐야 된다는 유머. 특히 아스날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라리가 팀들에게 스토크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3. 상징
3.1.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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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2년 스토크의 첫 번째 엠블럼이다. 가장 오래된 구단답게 스토크온트렌트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각각 도시의 특징을 의미하는 그림들이다. 옹기장이의 도시인만큼 도자기가 그려져있다, 밑의 띠에 새겨져 있는 VIS UNITA FORTIOR는 '함께하면 더욱 강해진다'라는 라틴어이며 도시의 모토이다. 현재의 엠블럼에도 새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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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더욱 간단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Stoke City Football Club의 약자인 S.C.F.C.가 상단에 위치해있고 첫 번째 엠블럼의 도자기와 같은 의미로 가마가 그려져있다, 왼쪽 상단에 그려진 프레첼을 닮은 것은 스태포드셔를 상징하는 심볼인 3고리 매듭이다.
- 1989년, S.C.F.C.가 흰색으로 바뀐 엠블럼을 3년동안 사용했다.
- 1992년에는 도시 문장을 간략화한 엠블럼으로 돌아갔다, 복잡한 삽화들은 빠지고 핵심만이 남았다.
- 2012-13 시즌, 구단 창단 150년을 맞아 기념 엠블럼을 제정했다. 12-13 시즌과 13-14 시즌 홈/어웨이 킷에 사용되었다.
- 스토크 시티의 현 엠블럼에는 파란색 테두리를 두른 방패 안에 스토크 시티의 이름과 전통적인 유니폼 색상인 빨간색과 흰색의 줄무늬가 들어가 있다, 2001년에 만들어졌고, 클럽의 별명인 The Potters가 처음으로 새겨졌다.
3.2. 기타
- 스토크 시티의 별명은 더 포터스(The Potters, 옹기장)인데, 스토크 시티의 연고지인 스토크온트렌트가 유럽 도자기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중세부터 영국의 도자기제조업의 중심지였으며, 영국이 세계적인 도자기 생산국으로 우뚝 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도 도시의 역에는 영국 도자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시아 웨지우드의 동상이 서있다.
- 도자기, 그것도 티팟세트와 접시, 그릇을 만드는 아기자기한 여성스러운 산업이 성행하던 도시인 스토크온트렌트를 연고로 하는 축구단인 스토크 시티는 남성성의 극을 달리는 축구팀이다.
4. 역사
1863년에 스토크 램블러스라는 팀명으로 창립하였는데, 이 팀의 창설을 주도한 헨리 알몬드는 팀의 주장까지 맡아 팀의 공식 첫 경기에서 득점을 따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1878년에 빅토리아 크리켓 클럽과 합병하여 스토크 FC로 바꾸고 난 뒤 1885년에 프로 팀이 되었고, 1928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하여 새로 출발했다.
그 동안 1, 2부를 오가는 시기를 보내다 1932년부터 잉글랜드 역사상 뛰어난 선수로 이름나게 되는 스탠리 매튜스가 데뷔하여 데뷔 첫 시즌인 1932-33 시즌에 1부 리그로 다시 승격한 뒤 1935년부터는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 출신인 밥 맥글로리(Bob McGrory)가 감독으로 취임한 뒤 매튜스를 앞세워 1부 리그에서 상당 기간동안 경쟁했는데, 특히 1935-36 시즌과 1946-47 시즌에 두 차례 팀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6-47 시즌에 매튜스가 블랙풀로 떠나자 팀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1952-53 시즌에는 21위로 강등당한 이후 한동안 2부 리그에 머물다가 1960년부터 토니 와딩턴 감독이 취임하고 1961년부터 매튜스가 스토크로 돌아오면서 1962-63 시즌에 또다시 1부 리그로 승격했다. 1965년에 매튜스가 은퇴한 후 1967년 레스터 시티로부터 골키퍼 고든 뱅크스를 사서 1971-72 시즌 리그 컵 결승전에서 강호 첼시를 꺾고 우승 컵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1972년 뱅크스가 교통사고로 한쪽 눈을 잃는 부상을 입은 뒤 부침을 거듭하여 1984-85 시즌 1부 리그에서 강등된 이후부터는 24년간 2부와 3부 리그를 오가는 하위팀 신세이다가, 2008-09 시즌에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해 승격팀들 중에선 가장 높은 성적인 1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2017-18 시즌 강등 전까지 10년간 중위권을 유지했다.
2013년 마크 휴즈 감독이 오면서 이러한 피지컬 축구는 어느정도 줄어들었다. 피지컬 축구에서 패스 위주의 신사(?)축구로 13-14, 14-15 시즌에는 스토크의 최고 성적인 9위까지 올려줬다. 이 때 대표로 활약한 선수는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 보얀 키르키치, 마메 디우프등이였다. 특히 2015년 여름시장때는 제르단 샤치리, 이브라힘 아펠라이등 날쌘 윙어들을 영입하며 기존 스토크의 색을 옅게 만들고 있다. 이 외에도 마르크 무니에사, 모하 엘 오리야치, 세르히오 몰리나 등 라리가 정상팀의 유스에서 유망주를 많이 영입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국가대표 골키퍼 사관학교이기도 하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역대 최고의 골키퍼 넘버원을 다투는 고든 뱅크스와 피터 쉴튼이 스토크에서 몇 년을 활동했고, 스토크가 08년 프리미어 승급 이후 주전 골키퍼였던 토마스 쇠렌센은 덴마크의 주전 골키퍼였고, 이후 주전이 된 아스미르 베고비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주전 골키퍼이며 베고비치의 이적으로 15시즌부터 출장중인 잭 버틀란드도 조 하트를 뒤이을 잉글랜드 주전 골키퍼가 유력한 선수이다. 승급이후 중위권으로 안착할 수 있던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골키퍼 때문인듯.
5. 응원가 - We'll Be With You
- 가사 -
여담으로 72년 리그컵 결승에서 스토크에게 진 첼시 선수단이 직접 부르고 녹음한 응원가가 현재 첼시의 메인 응원가인 'Blue Is The Color'이다. 그리고 브리타니아를 채우는 포터스의 응원소리가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측정한 결과 제트기 이륙 시보다 높은 122.6 데시벨이 나왔다고 한다.
6. 역대 시즌
6.1. 2010-14 시즌
스토크 시티 FC/2010-14 시즌 문서로.
6.2. 2014-15 시즌
스토크 시티 FC/2014-15 시즌 문서로.
6.3. 2015-16 시즌
팀 득실을 '''-14'''로 기록되면서 득실로 따지면 강등권 성적이지만 9위를 기록하면서 마쳤다. 이길때는 타이트하게 질때는 크게 지는 상황이 여러번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시즌 중반과 후반에 터진 3연속 3실점 패배와 3연속 4실점 패배가 컸다. 하지만 리그 컵 시즌까지 승점을 잘 벌어 놓아서 여차저차 9위로 마치게 되었다.
스토크 시티 FC/2015-16 시즌 문서로.
6.4. 2016-17 시즌
스토크 시티 FC/2016-17 시즌 문서로.
6.5. 2017-18 시즌
'''Goodbye EPL'''
스토크 시티 FC/2017-18 시즌 문서로.
6.6. 2018-19 시즌
2부리그에서 시작하는 첫 시즌이다.
6.7. 2019-20 시즌
11라운드까지 1승 2무 8패로 승점이 5점이다..그나마도 10라운드까지 2무 8패였다가 11라운드에서 드디어 1승을 거뒀다. 순위는 당연히 24위 꼴지.
결국 네이선 존스 감독은 11월 2일자로 전격 경질당했다. 후임으로 현직 북아일랜드 대표팀 감독인 마이클 오닐이 부임해 대표팀과 스토크 감독직을 겸직하게 된다.
2020년 2월 25일 현재 기준 37점으로 19위다.
44라운드 브리스톨 시티 원정경기에서 1-1로 비기며 챔피언십 잔류를 확정지었다.
7. 역대 스폰서
7.1. 유니폼
- 애드머럴 스포츠웨어 (1974~1975/1987~1989)
- 엄브로 (1975~1986)
- 하이테크 (1986~1987)
- 스코어라인 (1989~1990)
- 매치위너 (1990~1993)
- 아식스 (1993~2001)
- 르꼬끄 스포르티브 (2001~2003/2007~2010)
- 퓨마 (2003~2007)
- 아디다스 (2010~2014)
- 워리어 스포츠 (2014~2015)
- 뉴밸런스 (2015~2016)
- 마크론 (2016~ )
7.2. 메인 스폰서
- 리코 (1980~1985)
- 크리스탈 타일스 (1986~1990)
- 프레들리 홈스 (1990~1991)
- 안셀스[9] (1991~1993)
- 칼링 브루어리[10] (1993~1995)
- Broxap (1995~1996)
- 아식스 (1996~1997)
- 브리타니아 (1997~2012)
- Bet365 (2012~ )
8. 팬 성향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스토크 시티는 훌리건 성향이 과격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데였다. 팀이 이들을 쉽게 제압하지 못한 탓에 과격 팬들의 거친 행동으로 팀도 덩달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서포터 집단은 '노티 포티(Naughty Potty)'로, 한때 7만명의 회원들을 보유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이들은 1998년 1월 10일 브리타니아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0-8로 지자 팬들은 경기장에서 소란을 벌였고, 심지어는 경기장 의자를 뽑아 그라운드에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2001년 10월 21일에 열린 이웃 팀 포트 베일과의 더비 경기에서도 패싸움으로 인해 84명의 팬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2003년에 BBC는 스토크 시티를 '훌리건이 가장 활발하고 조직화가 잘 된 팀'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스토크 시티는 그간의 오명을 벗기 위해 원정 팬들에게 ID 카드를 발급하면서 자정에 나서기 시작, 팬 문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고 평가받은 2008년경에야 겨우 사라졌다고 한다. (출처 : <유럽 축구 엠블럼 사전(류청 저)> 보누스. 2014. p66~67.)
EPL 입성 후에는 아스날 FC 팬들하고의 관계가 최악이다. 마티유 드뷔시, 아론 램지등 주축 선수를 향해 장기적인 부상을 입힌 것을 필두로 2014년 찰리 아담의 알렉시스 산체스 초크홀드 사건 등 스토크의 롱볼몸빵 축구에 티키타카 전술의 아스날 선수들이 자주 쓰러지면서 깡패같은 팀이라 스토크를 욕했고, 스토크 팬들도 자신 팀의 축구가 과격하더라도 경기 자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고 말하며 자신의 팀이 욕먹으니 똑같이 아스날을 팬과 싸잡아서 욕하고 있는 실정이다. FM2015에서도 아스날과 스토크는 라이벌 관계로 설명되고 있다. 2016년 1월 16일 열린 아스날 홈전에서 아론 렘지를 향해 한 팬이 "그는 절름발이로 걷네" 를 연호했는데, 이는 스토크의 회장인 피터 코츠가 자제를 요구했다. #
스토크 시티가 강등 당하자, 현지 아스날 팬들은 스토크 공식 페이스북에 몰려와 아론 램지 사건을 다시 이야기하며, 축구의 질을 낮춘 최악의 팀이라는 비난을 남기며 덧글창을 테러했다.
9. 스쿼드
[1] 옹기장이라는 뜻. 도자기 산업이 발달된 연고지를 빗대어 만들어진 별명[2] 스토크 램블러스(Stoke Ramblers)라는 이름으로 시작됐으며, 1878년 빅토리아 크리켓 클럽과 합병하며 스토크 풋볼 클럽으로 명칭을 바꿨고, 1885년에 프로로 전향했다. (출처 : <유럽 축구 엠블럼 사전(류청 저)> 보누스. 2014. p66~67.)[3] 현재 포트 베일은 4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어서 둘의 더비가 성사된 게 까마득하다. 마지막 만남은 2002년 2월 10일[4] 둘 다 미들랜즈의 클럽이다. 포트 베일이 4부에 있어 지역적으로 가까운 두 클럽과 라이벌 의식 형성.[5] 영국의 축구 팀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구단(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축구단이란 주장도 하지만 1848년 창단되었던 VfL 보훔이나 1853년에 창단되었다는 스코틀랜드 지역 리그 팀(팀 이름은 이전에 포포투 한글판에서 구단 이름만 잠깐 소개한 바 있다.)이 있다. 그러나 축구 목적으로 창설된 클럽 가운데 최고(最古)인 것은 분명)으로 1857년 창단되었다. 지금은 8부 리그인 노던 프리미어리그 디비전 1 남부 소속.[6] 1862년 창단된 노팅엄에 위치한 구단. 현재는 4부 리그인 풋볼 리그 2 소속.[7] 스토크-온-트렌트 태생으로 1930년 스토크 시티의 유스 멤버로 축구를 시작, 1947년 남들 은퇴할 나이인 32세에 블랙풀로 이적할 때까지 스토크에 머물렀다가, '''46세'''인 1961년 고향팀으로 돌아와 '''50세에 은퇴'''했다. 그야말로 전설적인 행보.[8]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의 우승 멤버로,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당시 펠레의 완벽한 헤딩슛을 그림같이 막아내는 장면으로 가장 유명하다. 슛을 막힌 펠레가 '내가 본 가장 위대한 선방'이라고 말하며 경의를 표했을 정도. 세간에 이름과 안정감에서 따온 별명 '잉글랜드의 은행(Banks of England)'으로 통했으며, 국제축구역사통계재단(IFFHS)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골키퍼 2위에 선정된 명수문장. 참고로 이 순위표의 1위는 넘사벽 레프 야신, 3위는 디노 조프.[9] 맥주 브랜드[10] 한때 리그 컵 스폰서였던 그 칼링이다.